철혈정책으로 독일 제국을 통일한 비스마르크의 사전에 신뢰란 없었다. 오늘의 전우가 내일에는 그에게 사냥감이었다. 그는 베틀(梭) 외교와 원교근공 모략의 가장 충성스런 신도였다.
그는 강경함과 민활함을 교체 운용하면서 연합과 고립을 병용하여 좌교우공(左交右攻), 원교근공(遠交近攻)으로 번갈아 가면서 출격하여 독일 연방을 성립시켰다.
원교근공의 운용은 상대를 분화시키고, 상대의 결맹을 막는데 있다. 이것을 위하여 한쪽에서는 집중한 전체 상대를 분산시켜 적아(敵我)를 구분한 다음 점차적으로 잠식할 수 있도록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주요하지 않은 경쟁 상대를 결합하여 주요 상대를 도모하여 입지를 굳혀야 한다.
이 같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의 계략은 2천 년 전 진국의 재상 범저의 대걸작이었다.
<전국책(戰國策)>에서 범저는 진왕에게 이렇게 유세(遊說)한다.
“왕께서는 멀리 있는 국가들과는 외교를 맺고 가까운 이웃의 국가들은 공격하는 것이 좋습니다. 촌토(寸土)를 얻어도 왕의 것이 될 것이며 척토(尺土)를 얻어도 왕의 것이 될 것입니다. 지금 가까운 곳을 두고 먼 곳을 공격한다면 이 어찌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범저가 진왕에게 원교근공을 권한 것은 이전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 진나라는 일찍이 온순하지 않던 이웃인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넘어 멀리 제(齊)나라를 친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큰 실책이었다. 제(齊)나라가 멀리 초(楚)나라를 쳤다가 대승을 거두기는 하였지만 원기(元氣)를 크게 상하였으며 이 틈을 노리고 제후(諸侯)들이 공격하는 어부지리를 허용하고 말았던 경우와 같았다. 하여 먼 이웃을 우군(友軍)으로 만들어 놓고 가까운 이웃을 잠식해 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진나라는 원교근공의 책략으로 강권(强勸)을 하나씩 와해시키면서 통일의 초석을 다졌던 것이다.
1937년 복주 출생으로, 남경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복건작가협회이사, 문학잡지 《방초지(芳草地)》 주편을 역임했으며, 장편역사소설 《요리(要離)》로 제2회 나관중역사소설창작상 우등상을 받았다.
중·단편소설로 《설백(雪白)의 홍두화(紅豆花)》와《검은 화염》이 있으며, 극(劇)으로 《황화제(黃花祭)》, 《장형(張衡)》과 《소설 삼십육계》 중 《타초경사(打草驚蛇)》, 《차시환혼(借屍還魂)》, 《원교근공(遠交近攻)》, 《주위상(走爲上)》이 있다.